다문화여성 인터뷰 15. 필리핀 출신 시에라메이마코노
마스크 너머로 짓는 미소가 보이는 듯했다. 안경을 쓴 눈이 환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0년 필리핀에서 제주도에 온 시에라메이(36)씨는 워킹맘이다. 오전 9시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서 제주시청 인근 사무실로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퇴근을 하자마자 초등학교 3․4학년인 아이들을 돌보고 저녁 준비를 하기에 여념이 없다. 건설과 관련된 일을 하는 남편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2010년 5월 따뜻한 봄날 그녀가 처음 터를 잡은 곳은 남편의 고향인 함덕과 정반대인 서귀포였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그는 “한국말을 정말 하나도 몰랐다. 다행히 서귀포시 한 복지센터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 남원읍 신흥리로 이사를 가면서 방문학습으로 한국어를 이어갔다”며 “근데 2011년과 2012년 아이들을 낳는 바람에 한국어 공부가 중단됐다. 이후 2013년 시어머니가 사시는 함덕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큰 아이(아들)는 손을 잡고, 작은 아이(딸)를 업고 함덕에서 화북까지 버스를 타고 예방접종 다닐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기억했다.
그는 이어 “심지어 남편과 말이 통하지 않아 많은 갈등을 겪기도 했다. 특히 제주 사람들은 목소리 톤이 높아 내가 듣기에 남편이 화를 내는 것 같아 눈물도 많이 흘렸다. 다행히 지금은 남편과 농담도 주고받고 싸울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늘었다”고 웃음 지었다.
그는 함덕으로 이사한 뒤 시어머니와 어린이집 도움으로 제주글로벌센터를 다니며 한국어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란 아이들은 현재 함덕초등학교 3,4학년에 재학중이다. 그는 “남편한테 우스갯소리로 ‘도둑놈’이라고 말한다”며 “남편과 나이 차이가 많지만 여전히 생각이 어리다. 그래서 난 ‘아이 세 명’을 키우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환하게 웃었다.
결혼 후 남편과 소통 어려움․독박육아 겹쳐
학교 알림장 글 어려워 영어 병기해줬으면
글로벌센터 근무 한국말r-·다양한 활동 경험
그는 필리핀에서 대학에서 관리회계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변호사 사무실과 공장에서 관리자로 활약했다. 그러던 중 필리핀에서 남편을 만났다. 그는 남편과 한국 식당에서 먹었던 자장면과 김치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그런 색과 맛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자장면이 가장 신기하고 맛있었다”며 “그런데 한국에 오니 자장면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많았다. 그중 필리핀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매콤한 국물의 내장탕을 가장 좋아한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는 제주에서 다양한 경험과 학습을 하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필리핀에서 배우고 싶었던 미용기술을 제주에서 배워 남편과 두 아이의 머리를 전담하고 있다. 또한 2018년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해서 2020년 사이버대학교를 졸업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글로벌센터에서 배운 난타를 구좌읍주민센터에서 어르신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는 현재 제주글로벌센터에서 팀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제주가 안전하고 시설이 편해 만족하다고 했다. 그는 “제주에 살면서 불편했던 점은 별로 없다. 도시가 안전하고 병원, 마트, 학교, 해수욕장 등이 가까워서 편하다”며 “특히 남편이 함덕농협 조합원인데 이주여성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다양한 혜택을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아이들이 취학하면서 겪은 어려움도 소개했다. 바쁜 남편을 위해 이른바 ‘독박육아’에 시달렸는데 학교에서 보낸 알림장이 너무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말을 입으로 하는 것과 글로 보는 건 달라서 알림장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도 주변의 ‘초보’ 다문화 엄마들은 알림장을 이해하기 어려워해 ‘선배’ 엄마들에게 물어보곤 한다”며 “안내장을 이해하기 쉽게 작성해 줬으면 좋겠다. 차라리 영어와 한국어 두 개로 만들어주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