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박·콜라비·귤농사 제주사는 재미 ‘쏠쏠’
수줍음 많은 남편이지만 남들에 ‘아내자랑’
새내기 이주 여성들에게 ‘큰언니’라고 불려

“아무도 없는 한국에서 돈도 없으면 더 외롭다”며 현금 100만원을 용돈으로 쥐어주신 시어머니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는 방금숙씨.
“아무도 없는 한국에서 돈도 없으면 더 외롭다”며 현금 100만원을 용돈으로 쥐어주신 시어머니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는 방금숙씨.

2006년 8월 7일, 제주시 애월읍 중산간 마을인 광령리에 처음 도착한 방금숙(52)씨는 서른여섯 제주에 도착해 지금까지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내가 농사를 지을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방씨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첫해 농사를 시작했는데 손해를 많이 봤다. 그 뒤로 5~6년 힘들었는데 근면 성실한 남편 덕분에 지금은 이 근처에서는 농사 잘 짓기로 입소문이 났을 정도”라며 “다른 사람들은 수박농사를 지어 평당 5000원을 받는데 반해 우리는 7000원을 받는다. 남편이 밭에 붙어살다시피 한 결과”라고 뿌듯해했다.

그는 큰 아이를 낳던 2008년에는 참깨 농사를 지었는데 모두 망쳐버렸다. 그는 “참깨를 수확한 뒤 6일 내내 비가 내려 모두 망쳤다. 2008년 중국에서 올림픽 할 당시 생일도 챙기지 못하고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속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성실하기만 한 남편’ 때문에 ‘이 사람과 같이 계속 살 수 있을까’ 고민도 많았다. 그는 남편에게 섭섭함을 느꼈던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제주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았다. 그 보상으로 농협에서 우리 가족을 중국에 보내준다며 왕복 비행기 표와 현지 체류비를 준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이 거부해서 가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떠나서 많이 원망했다. 그러다 차라리 마음을 비우면서 살기로 다짐하니 오히려 편했다. 그러다 요즘은 제가 남편을 닮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도 없는 한국에서 돈도 없으면 더 외롭다”며 현금 100만원을 용돈으로 쥐어주신 시어머니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는 방금숙씨.
“아무도 없는 한국에서 돈도 없으면 더 외롭다”며 현금 100만원을 용돈으로 쥐어주신 시어머니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는 방금숙씨.

그는 어렵던 농사일이 이제는 재미있다고 했다. 그는 “단호박, 콜라비, 귤 등 수확한 농산물을 직거래로 판매하니까 재미가 있다. 우리 귤과 단호박은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라며 “특히 텃밭에 귤을 심었는데 남편이 제재소를 운영하면서 발생한 톱밥을 거름으로 깔고, 시어머니께서 손수 잡초를 뽑아서 제초제를 뿌리지 않아 다른 집 귤보다 맛있다. 그래서 해마다 모자라서 귤을 주문하는 사람들에게 다 보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하는 날에도 감귤 하우스에서 작업을 한다고 했다.

그는 수줍음 많이 남편이 ‘츤데레’라고 자랑했다. 그는 “남편이 키도 크고 잘 생겼다. 심지어 아들도 아빠가 잘 생겼다고 한다. 남편이 말로 표현은 못하는데 내가 출출할 것 같다 싶으면 간식을 챙겨 준다. 가끔 시누이들이 ‘오빠가 언니 볼 때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고 놀린다. 남편이 다른 곳에 갔는데 내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 좋아하고 가끔 자랑도 한다고 한다. 이제는 이 사람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며 “요즘은 남편이 아플까 봐 걱정된다. 신랑도 내가 아프면 걱정하는 눈치”라고 애틋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아이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중학생인 아들이 지금도 예뻐 죽겠다고 했다. 그는 “아이가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어줘서 그런지 어린이집에 갔는데 말을 잘해서 상을 받아올 정도였다”며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성격도 좋다. 그러다 점점 크니까 나하고는 놀아주지도 않는다”고 웃음 지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적응하지 못한 제주 문화로 ‘제사’를 꼽았다. 처음 제주도에 왔을 땐 제사를 16번 모셨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제사를 많이 없애서 6번(모둠 벌초를 포함해 9번)으로 줄었다. 그런데 모둠 벌초를 하는데 필요한 음식은 저희가 계속했기 때문에 많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아무도 없는 한국에서 돈도 없으면 더 외롭다”며 현금 100만원을 용돈으로 쥐어주신 시어머니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는 방금숙씨.
“아무도 없는 한국에서 돈도 없으면 더 외롭다”며 현금 100만원을 용돈으로 쥐어주신 시어머니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는 방금숙씨.

그는 동네 대소사, 애월농협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그는 “동네 행사가 있으면 꼭 참석해서 막내인 제가 심부름을 도맡아 한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한다”며 “또한 농사를 짓다 보니 농협 행사에도 많이 참여한다. 새내기 결혼 이주 여성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있는데 아이들을 돌봐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가 살뜰하게 새내기 이주 여성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어울린 결과 그에게는 ‘큰언니’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가 가장 행복할 때는 ‘제주에 사는 지금’이다. 그는 “처음에는 지인이나 친구들이 육지에 있어서 ‘나 혼자 제주에 유배돼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서울에 가끔 가면 제주도 공기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아 이곳에 뼈를 묻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가족 모두가 건강하게 사는 것이 꿈이다. 그는 “신랑이 적극적으로 변해서 여행도 다니고 싶다. 남편과 함께 제주도를 벗어나서 여행을 간 곳이 없어 ‘억울’하다”며 “막내 시누이가 ‘언니가 잘해서 아이가 잘 크고 집안도 화목해졌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내가 잘 살았구나’라고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