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좋은 제주 9.  이주10년차 유현상씨
식당 운영하다 “후회할 것 같다”며 무작정 제주행에 가족도 동의
아내는 직전 해녀회장…궂은일 도맡아 하며 마을 구성원 인정받아

이주 10년차인 유현상씨.
이주 10년차인 유현상씨.

“2012년 4월에 제주도에 와수다. 동네에는 저보다 어린 젊은이들이 거의 어수다.”
얼핏 듣기에도 제주도 토박이의 발음과 다를 것 없는 유현상씨(47)는 전업 농업인이다. 올해로 10년차 제주 이주민인 유씨는 동갑내기 부인과 함께 한림읍 귀덕1리의 ‘젊은이’로 온동네의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유씨는 귀덕1리 운영위원으로, 아내는 해녀가 직업으로 직전 잠수회장까지 지냈을 정도이다.
유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10년의 제주 이주의 애환을 들어봤다.
▲ 제주에 내려온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 서울 토박이로 적지 않은 규모의 냉면전문 식당을 운영하다가 문득 이렇게 살면 후회할 것 같았다.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제주여행을 내려왔다. 2주 동안 올렛길도 걷고 사람들을 만나고 하면서 이주를 결심했다. 아내와 초등학생 딸에게 제주로 이주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더니 흔쾌히 동의를 해서 서울생활을 접고 바로 제주로 내려왔다.
▲ 제주에서 뭘 하며 살겠다는 계획이나 설계없이 무작정 내려왔다는 말인지.
= 그렇다. 하지만 자신이 있었다. 우리 부부와 딸아이, 세 식구 굶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귀덕리를 정착지로 택한 이유는 아내가 그냥 지도를 보면서 한림읍에 정착하고 싶다고 했다. 한림읍사무소를 찾아가 이주할 마을을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귀덕1리를 소개해 줘서 여기로 정했고 지난 10년 동안 계속 살고 있다.
▲ 여기서 뭘 생업으로 택했는지.
= 농업이다. 서울에서는 화분갈이도 해본 적이 없는 저는 귀덕리에 오자마자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밭일 하는 것을 직접 보고 농사를 짓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도와드렸다. 그 당시 쪽파 가격이 엄청 좋았다. 그래서 농사를 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동네 삼촌들을 따라다니면서 농삿일을 배웠다. 지금은 전업 농업인으로, 그리고 농업후계자로 브로콜리와 쪽파, 양배추, 콜라비 등 양채류 농사를 짓고 있다.
▲ 귀덕1리의 운영위원으로 부인은 잠수회장까지 했는데 특별히 마을주민으로 녹아들어간 비결이 있는가.
= 당시만 해도 외지에서 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동네분들을 몰랐지만 동네 삼촌들은 대부분 저를 알고 있었다. 특별한 직업이 없었으니까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부지런히 동네 삼촌들의 농삿일을 도와드렸다. 아내는 농삿일 보다는 물질을 배워 보겠다고 했다. 둘이 마을일을 빠지지 않고 돌아보려고 했고, 그런 진심을 동네 삼촌들이 알아준 것 같다. 당시는 동네 삼촌들의 사투리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욕을 하는지 칭찬하지도…. 지금도 나이 들어서 농삿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동네 삼촌들의 밭을 대신 갈아주거나 마을의 대소사에는 꼭 참석하려고 한다.
▲ 귀덕리에 살면서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지.
= 저는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다. 왜냐하면 좀 힘들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내가 외지에서 와서 힘든게 아니라 동네분들도 살면서 힘든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거쳐가야 하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받아들였다. 다행히 아내는 해녀일을 아주 좋아한다. 
▲ 아내가 해녀를 직업으로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 먼저 마을에서 아내에게 해녀를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내심 마을에 좀 더 뿌리내릴 수 있겠다고 좋아했지만 아내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 해녀 일이 위험한데다 아내는  수영을 전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내가 어엿한 전업 해녀로 일을 하고 있다. 농삿일은 제가 주로 하는데 아내는 해녀들이 서로 챙겨주고 벗이 되주는 정서가 좋다고 잠수회 일에 열성이다.
▲ 제주에 이주해 온 분들과 네트워크가 되는지, 그리고 이주를 생각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이주민들과의 교류가 많았지만 현재는 거의 없다. 특히 농사를 짓는 이주민들이 많지 않아 사실상 교류가 단절된 상태이다. 그리고 농삿일에 바빠서 이주민들과 만날 수 있는 여유로움도 없다. 제주도가 폐쇄적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걸 텃새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주민들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살다가 가는 일이 반복되면서 마을 주민들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고 본다.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마을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동네삼촌들도 도와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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