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인터뷰 17. 베트남 출신 고은희 씨
조천농협 고영미 과장에게 제주에서 터를 잡고 당차게 살고 있는 이주여성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이 분은 비가 오는 날에만 가능합니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베트탐 출신 고은희(37)씨는 지난 2005년 7월 제주시 조천읍에 정착한 이주여성이다.
6대 독자인 남편 신윤범 씨와 함께 스물한 살 나이에 조천읍에 도착한 고씨는 말이 통하지 않아 힘들었지만 일주일에 두 차례 다문화센터의 도움으로 한국말을 배웠고, 동네 ‘삼춘’들과 함께 밭일을 하면서 ‘제주어’까지 습득했다.
고씨는 “제주에 처음 왔을 때 너무 외로워서 베트남과 대만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눴다”며 “외로움과 심심함을 달래기 위함이었는데 전화요금이 110만원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올해 서른일곱인 고씨는 현재 한국 사람도 하기 힘들다는 ‘용역반장’으로 활동하며 조천읍 관내에서 이름을 알리며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또한 조천농협 농가주부모임의 회원으로 가입된 상태다.
특히 고씨는 조천농협 유일한 이주여성 조합원으로 최근에는 자신의 명의로 땅 2148㎡(650평)를 구입해 스스로 시설하우스를 지은 당찬 여성이다. 그는 “하우스를 짓는 사람들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워 지난 9월과 10월 두 달에 걸쳐 3미터 높이에 올라가 하우스를 직접 지었다”며 “굴삭기, 트랙터, 1톤 트럭, 관리기도 운전할 줄 안다”고 자랑했다. 그는 농협을 통해 각종 농기계 운전 방법을 배워 여성농민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는 제주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트럭 면허증도 취득했다. 그는 “베트남에서는 가족과 함께 슈퍼만 운영했다. 트럭을 운전하고 농사를 짓는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며 “그런데 제주도에 와서는 베트남에서 배우거나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 병시중·가사·농업노동… 키위 농사로 꿈 키워
굴삭기·트럭·농사용 관리기 직접 운전하는 ‘여성농민’
본인 명의로 땅 2148㎡ 구입해 하우스도 직접 시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당시 몸이 편찮으신 시어머니 병시중을 3년간 도맡았다. 고씨와 인연을 맺고 있는 고영미 과장은 “고씨가 워낙 잘하니까 농협 조합원으로 가입시켰다. 조천농협에서 유일한 다문화 여성 조합원이자 농가주부모임 회원”이라며 “제주의 보통 농민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작업반장 역할도 한다. 농사를 잘 짓고 부지런하다는 입소문이 나 고씨를 찾는 사람이 많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씨는 농사를 지으며 8년째 ‘반장’ 일을 하고 있다.
고씨는 중3과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2명을 둔 ‘엄마’다. 스물둘에 큰 아이를 낳은 고씨는 “아이들 크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좋다”며 “그런데 큰 아이에게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좀 힘들었다”고 여느 한국 학부모와 같은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농협 활동에도 적극 참여한다. 농협이 마련한 1대1 영농활동 교육뿐만 아니라 각종 다문화 행사에도 적극 참석한다. 그는 “베트남에선 운전도 못했는데 제주에 오니까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래서 농협이 마련한 트랙터, 관리기, 굴삭기 교육을 받아 최근엔 굴삭기를 농협에서 임대해 직접 농사일을 했다”고 웃음 지었다.
그와 함께 인연을 맺어 1대1 영농교육을 한 고양순씨는 “1대1 맞춤 농업교육을 할 때 우리 밭에 와서 감귤 새로운 품종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농업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과 농업을 통해 아들과 잘 지낼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영농교육에 임했다”며 “교육을 통해 둘도 없는 사이로 변했고 정말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알게 됐다”고 기억했다.
그는 2014년 농협재단 후원으로 고국인 베트남에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가장 최근엔 3년전 고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올해 11월 중순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가보지도 못했다. 그는 궁여지책으로 직접 음식을 장만해 제사상을 차려 친정어머니를 그리워했다. 그는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가보지 못한 만큼 코로나가 빨리 지나가면 베트남에 한번 가고 싶다”며 “제가 10남매(6남 4녀)중 9번째인데 막내 여동생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