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과 함께하는 인문학 ⑤ 4·3
대정초 몽생이 합창단, 섯알오름서 희생자 추모 공연
“4·3 삶 속 깊이 새겨진 아픈 역사…노래로 기억하다”

앉아서 세계를 여행하고 몇 번이 손가락 터치로 원하는 음식이 식탁 앞에 와 있는 시대다. 편리하고 풍요로워진 생활 속에서도 무엇인지 모를 헛헛함이 존재한다. ‘풍요속 결핍’, 인문학적 사유와 따뜻한 교감이 필요하다. 제주창조신화의 주인공 설문대할망, 얼기설기 쌓아 태풍에도 끄떡없는 돌담 등 제주 곳곳에는 선인들의 지혜와 그들이 남긴 메시지가 고스란히 남았다. ㈜제주매일은 도민 모두가 행복한 문화·복지도시 실현을 위해 제주의 역사와 제주어, 제주학교의 역사 등 인문학 활성화사업 프로그램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하면서 삶을 나누고 배움으로 이어가고 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전하는 제주인문학을 지면에 소개해 독자들과 더 오래, 더 깊이 공유한고자 한다. [편집자주]

“백삼십이개 별 섯알오름 뜰 때 붉은 동백꽃 피로 물드네. 바당 보름 거칠어도 우리 마음 굳세게 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제주가 살았다. 제주가 살았다. 한라가 춤추고 바다가 노래해. 에헤이 데헤이 제주가 살았다.”

15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위치한 섯알오름에서 노래 ‘제주가 살았다’가 대정 몽생이 합창단에 의해 울려 퍼졌다.

15일 대정 몽생이 합창단이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추모비 앞에서 추모 공연을 하고 있다.
15일 대정 몽생이 합창단이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추모비 앞에서 추모 공연을 하고 있다.

‘제주가 살았다’는 3·1운동을 이끌었던 유관순 열사가 옥중에서도 독립 의지를 담아 노래했던 것으로 널리 알려진 ‘대한이 살았다’를 개사한 곡이다. 익숙한 멜로디에 가사도 귀에 속속 박혔다.

제주도 서남쪽 끝에 있는 섯알오름은 제주 4·3 사건이 진정된 국면으로 접어들 무렵인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내무부 치안국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민족을 압살하던 예비검속을 악용해 무고한 양민 210명을 법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집단 학살해 암매장한 비극의 현장이다.

유족들이 7년이 지난 1957년에야 현장을 찾았지만 서로 엉킨 유골을 구분할 수 없어 함께 모아 묘를 만들어 그 억울한 죽음을 추모할 수 있도록 만든 곳이 백조일손지묘다.

백조일손 유가족은 끈질긴 탄원으로 당국의 허가를 받아 149위를 수습해 그중 132위를 상모리 지경 ‘백조일손지묘’에 안장했다. 이 묘는 ‘백 할아버지의 한 자손’이라는 뜻으로 시신을 구별할 수 없어 붙여진 이름이다.

제주 대정초등학교 4~6학년 학생과 지역 어르신으로 구성된 몽생이 합창단은 이날 4·3 유적지에서 춤과 노래로 4·3희생자를 추모했다. 지역 내 초등학생들이 마을의 4·3 유족지를 찾아 4·3의 역사를 배우고 이해하며 추모한 것인 만큼 의미가 남다르다.

대정 몽생이 합창단이 15일 서귀포시 서부종합사회복지관에서 제주어 4·3 노래와 안무를 하고 있다. [사진=김진규 기자]
대정 몽생이 합창단이 15일 서귀포시 서부종합사회복지관에서 제주어 4·3 노래와 안무를 하고 있다. [사진=김진규 기자]

제주 4·3이란 주제가 무거울 수 있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인 만큼 분위기가 엄숙하지만은 않았다.

섯알오름에서 서귀포시 서부종합사회복지관으로 자리를 옮긴 몽생이합창단원들은 본격적인 4·3 교육을 받았다. ‘섯알오름 4·3의 기억’이란 주제로 진행된 교육에서 아이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4·3 시기와 장소, 발발한 원인 등의 질문에 아이들은 거침 없이 정답을 말했다.

과거 모슬포가 365일 거친 파도와 바람이 불어 못 살겠다고 ‘못살포’로 불렸다는 지명이었다는 설명과 4·3사건 당시 조상들이 섯알오름에 트럭에 실려 끌려간 조상들이 고무신과 옷을 차 밖으로 내던진 것은 자신의 흔적을 유족에게 남기기 위한 것이라는 박은혜 몽생이 합창단 지휘자의 설명에 아이들은 탄식하기도 했다.

특히 “4·3은 한 마을 한 가족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 속 깊이 새겨진 아픔과 기억이다. 이를 잊지 말고 기억하고 화해하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박 지휘자의 말에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박은혜 몽생이 합창단 지휘자가 15일 서귀포시 서부종합사회복지관에서 제주4·3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김진규 기자]
박은혜 몽생이 합창단 지휘자가 15일 서귀포시 서부종합사회복지관에서 제주4·3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김진규 기자]

아이들은 담고 싶은 내용을 쓰며 ‘제주 4·3노래 만들기’도 함께했다. 박 지휘자는 이미 여러 4·3곡을 완성한 상태다. 제주어와 4·3이 잊히는 게 너무나 안타까워 제주어로 4·3곡을 쓴 것이다.

동화작가이자 공연기획자, 작곡가, 성악가를 겸하고 있는 박 지휘자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교육하는 만큼 4·3이라고 해서 어렵거나 무겁게 하지 않았다”며 “노래라는 도구를 이용해 아이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제주4·3이 잊히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