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요식업 은퇴 후 제주 이주 열망
제주로 시집간 큰딸에 누 끼칠까 포기
살고 싶은 제주Ⅱ.
제주살이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4.제주한달살기 김규완씨
20년 넘게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어렵사리 두 딸아이를 키워낸 김규완(68·여)씨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7년 장사를 접고 은퇴했다. 이후 코로나19를 거치며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김씨는 사회에서 ‘잉여 인간’으로 내팽개쳐지는 자신에 대해 회의감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인생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김씨는 제주 이주를 떠올렸다. 생전 살아본 적 없는 곳이지만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의 향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달 29일 제주에서 한달살이를 시작했다. 흘러가는 제주에서의 하루만큼 제주 이주에 대한 고민도 점점 무르익는 중이다.
▲제주매일이 시행하는 제주한달살기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사위의 추천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일상이 바쁘다 보니 한달살이 같은 건 마냥 남의 일인 줄로만 알고 살았어요. 그렇게 살아보는 사람들이 마냥 부러웠죠. 그런데 마침 사위가 제주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서 ‘이참에 한 번 살아보시지 않겠느냐’고 추천해줬어요. 큰딸이 현재 남편과 제주에서 살고 있는데, 혹시나 제가 그들에게 부담을 지어주는 게 아닐까 마음이 조금 쓰였어요. 그래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아서 참가하기로 했어요.
▲제주에서의 일상이 궁금하다. 하루하루 어떻게 보내는가.
제주에 들어와서 일주일 정도는 작은딸과 함께 쭉 서귀포시에서 지냈어요. 제주에는 바다가 많잖아요? 정방폭포, 천지연폭포, 주상절리, 외돌개, 쇠소깍, 섭지코지 등 그렇게 많이 알려진 해안가를 다니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곳이 있었는지.
이중섭 화가의 생가에 다녀왔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중섭이라는 분이 이제껏 제주 사람인 줄로만 알았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제주에서 남긴 작품이 많았구나’ 하고 오해했죠. 실제로는 제주에서 11개월밖에 살지 않았더라고요. 이번 프로그램을 계기로 이중섭 화가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게 된 것 같아요.
▲한달살이가 일반적인 여행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제주의 속살을 좀 더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여행 할때는 마음이 조금 분주해지기 마련이에요. 오기 전부터 여행 일정을 짜느라고 진을 빼는데, 한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다 보니 마음이 조금 편해요. 이번 제주 올 때도 계획을 특별히 세우지 않았어요. 옛 동네 길도 걸어보고 오히려 더 구석구석 둘러본 것 같아요.
▲평소 제주에 이주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지.
네. 서울이 매우 복잡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또 조용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에요. 일도 지치고 마음도 복잡할 때마다 그동안 제주도를 참 많이 떠올렸어요. ‘내가 사업을 접고 제주에서 살아보는 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평소 많이 했었죠. 그런데 어느 날 큰딸이 결혼하겠다더니, 이번에는 제주에서 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주 이주의 꿈을 접게 됐어요. 왜냐하면 딸이 이렇게 제주까지 왔는데 제가 쫓아와서는 정착해보겠다고 ‘이거 하겠다, 저거 하겠다’ 그러는 게, 혹시나 딸에게 누가 될까 봐서요. 어찌 보면 딸아이한테 선점당한 셈이죠.
▲제주 이주 시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지.
서울에서 오래 살았지만 제가 나고 자란 곳은 시골이에요. 그래서 이주한다고 하더라도 특별히 큰 걱정은 들지 않는 것 같아요. 다만,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제주가 외부와 좀 단절된 느낌이 드는 건 조금 걱정스럽긴 해요. 이따금 일이 생기면 비행기를 타고 다녀와야 하잖아요. 서울과 왕래가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 걱정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주 계획은 있는가.
완전히 내려오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작은딸이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홀로 내려오는 게 마음이 편친 않네요. 하지만 큰딸을 생각하면 내려오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보통 딸들이 시집가게 되면 흔히 ‘친정엄마 찬스’라고 해서 엄마 도움을 조금씩 받기도 하잖아요? 우리 큰딸은 그런 도움을 이제껏 전혀 받지 못했어요. 이게 늘 마음이 쓰였답니다. 그래서 꼭 이주만이 아니더라도 서울과 제주를 오가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보려고 해요. 제가 사업한다고 늘 바쁘게만 살다보니 딸아이와 좋은 시간을 가져보질 못했어요. 앞으로는 그런 시간을 가져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