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난 좋아마씸’ 2025 제주 한달살이 ⑮윤주영씨

7개월 아이까지 가족 완전체의 첫 여행으로 산후우울증 극복
삶의 속도 보다 방향에 집중하는 ‘인생의 한 페이지’로 기억

윤주영씨에게 7개월 아이까지 가족완전체로 한 제주살이는 소소한 행복의 의미를 찾게 해 준 인생의 한 페이지였다.
윤주영씨에게 7개월 아이까지 가족완전체로 한 제주살이는 소소한 행복의 의미를 찾게 해 준 인생의 한 페이지였다.

“조금은 모자라고 느리게 가더라도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의 방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왜 이제야 알았는지 모르겠어요.”

열 달 품었던 아이를 낳고 육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윤주영씨.

출근하는 남편 몫까지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혼자 아이를 돌보던 윤씨는 결국 번아웃이 왔다. 많은 여성들이 출산 후 겪는 산후우울증이 그를 비켜가지 않았다.

친정의 도움을 받기에는 그가 살고있는 인천과 광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그에게 제주 한달살이는 숨통을 열어주는 ‘보약 같은 시간’이었다. 신랑이 9월 한 달간 육아휴직을 하면서 지친 마음 달래기에 함께 나서줬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들을 꼭 닮은 7개월 아이까지 세 가족이 함께 떠나는 첫 여행.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배경으로 하늘에 총총 떠 있는 별을 세면서 마늘 바게트와 커피를 마시던 함덕해수욕장 차박의 추억을 따라 트렁크에 걸터앉아 여유를 부려보고 싶었다.

제주의 원시림인 곶자왈과 사려니숲길 등 자연의 울창함 속에서 숲의 향기를 맡으면서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서 당장이라고 뛰어오고 싶은 제주였다.

잠시 떠난다는 그 상상만으로도 설레던 윤씨는 제주시 구좌읍 펜션에서 한 달을 보냈다.

과거 제주사람들이 부모세대와 함께 살면서도 개인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던 ‘안거리 밖거리’를 체험할 수 있는 구옥이었다.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한 내부공간은 뒤집기를 시작한 아이에게도 쾌적한 보금자리가 됐다.

이웃집과 경계가 되면서도 정다운 이웃과의 관계를 말해주는 듯한 나지막한 돌담, 마을사람들의 커뮤니티처럼 느껴지는 정자 등 낯설지만 친근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올레길을 천천히 걸었다.

얼굴을 간질이는 바람과 마주칠 때마다 웃는 얼굴로 반겨주는 동네 주민, 마을카페의 여유 등. 그동안 육아때문 힘들었던 게 맞았나 싶을 정도로 이미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고 걸음걸이는 경쾌해졌다.

“제주 한달살이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제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삶의 방향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도시에서 늘 바쁘게 움직이다가 제주에서 한 걸음 느리게 살아보니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됐어요.”

윤씨는 육아로 인해 심신이 피로하다는 이유로 신랑과 다투는 일도 많았는데 제주에서는 서로를 이해하는 데 더 집중했다.

그는 자신의 여유로움이 아이에게도 전해져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확신한다.

행복은 생활이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질 때 찾아오는 게 아니라 행복하다고 믿는 그때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 인생의 한 페이지였다.

윤씨는 “제주에서 한걸음 느리게 살아보니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됐다”면서 “일상의 소중함,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지역이 가진 고유한 매력을 새롭게 느끼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과의 교류가 좀 더 공식적인 형태로 확대돼 제주를 좀더 깊이 즐기고 싶었지만 그 아쉬움이 채워지지 않은 것은 미련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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