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난 좋아마씸’ 2025 제주 한달살이㉑최규발씨
최규발 명예교수 “매년 방문하지만 늘 새로운 제주도”
“아픈 역사 지닌 삼다도…새로운 미학 알게 해준 시간”
최규발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명예교수는 서울에서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서귀포시 중문에서 열리는 연찬회 참석차 매년 제주를 방문했고 직장을 퇴임한 후에는 친구의 초대로 제주를 찾았다. 한해도 빠짐없이 자주 들렸던 익숙한 제주이지만 그에게는 늘 새로운 곳이다.
2020년 퇴임할 때 즈음 도서관 가기, 일본어 배우기, 파크골프, 서울 근교의 둘레길 걷기, 친구들과 담소 나누기가 일상이 될 때쯤 친구의 권유로 10여 일간 제주살이는 그가 제주 매력에 빠지기 충분했다.
사려니숲과 물영아리오름, 용눈이오름, 절물오름, 위미항 주변의 올레길, 쇠소깍, 표선 해변 등을 다녔다. 위미항에서 보목포구를 지나 소천지까지 걸어 본 올레길은 다시 걷고 싶은 길 중 으뜸이었다.
퇴임 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또는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로 거처를 옮기려고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위미와 중문, 애월, 서귀포 등에서 한 달, 때로는 두 달 살기를 할 정도로 그의 제주 사랑은 진심이다. 제주에서 생활하면서 피부 알레르기가 사라질 정도로 그와 제주의 궁합은 잘 맞았다.
최 교수는 지난 9월 24일부터 10월 23일까지 재차 제주에서 한달살이를 했다. 그는 제주시가 아닌 서귀포 지역에 숙소로 정했다. 그는 매일 눈을 뜨면 한라산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최 교수는 “김대건 신부길과 방사탑, 제주 해변의 신당을 보면서 외래종교와 토속신앙의 공존함에 대해 의아했는데 이는 제주도민의 여러 아픔을 치유 받으려는 마음이라고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제주살이를 하며 자주 식당을 찾는데 쉬는 날이 많았다. 식당마다 휴일이 달라 처음에는 굶는 일도 있었다”며 “점심에 문을 열면 저녁 장사는 하지 않고 저녁 장사를 하면 점심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밖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한 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돈을 쫓지 않는 여유로운 생활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곽지해수욕장에서 귀덕리를 행복한 마음으로 걷던 중 여러 개의 쓰레기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내가 치우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름답고 깨끗한 바다와 해변길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며 “이제 제주는 세계에 관심을 받는 섬인 만큼 흙 한 톨, 돌 하나라도 귀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는 참 아름다운 섬이다. 그러다 보니 섣부른 욕심이 생겨 제주에 내 땅이 백 평 정도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즈음에 와흘 메밀 협동조합을 방문해 드넓은 메밀밭을 돌아보았는데 그 수만 평의 땅을 어느 독지가가 기증했음을 알게 됐다. 동백동산 습지 역시 누군가의 기증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속물근성이 부끄러웠다”며 “서양에서는 기증이란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데 제주의 기증문화도 이에 못지않다. 제주를 사랑하고 기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올레길을 걷다가 또는 아침 산책을 하다 보면 일주도로나 중산간로에서 산록도로 쪽으로 걸어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낮은 곳에는 비교적 큰 귤밭이 있지만, 때로는 언덕 가파른 길가에 아주 작은 귤밭이 있기도 했다. 이 작은 땅에도 귤나무를 심기 위해 돌을 골라내 돌담을 쌓아 놓아 귤을 보호하는 것을 보면서 제주 어르신들의 슬기와 끈기, 억척스러움에 자못 고개가 숙여졌다”고 말했다.
그는 “휴양림이나 둘레길에서 본 숯가마터와 잣성, 사라봉이나 고내봉에서 본 봉수대, 태흥포구쪽에서 본 환해장성, 항몽유적지 하도의 별방진 이 모든 곳에서 애쓰신 분들의 노고가 지금의 제주를 있게 만든 것이다. 제주는 한라라는 큰 산에 기대어 67만의 도민이 열심히 가꾸어가며 생업에 충실한 곳으로 미래의 제주를 향한 열정이 모두의 마음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로 인해 타지인인 내 마음이 뿌듯해졌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제주 삼다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다랑쉬굴을 경건하게 찾아가게 하고 여자가 많은 아픔의 역사를, 자연경관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 바람의 조화를, 해안의 검은여를 구성하는 돌의 미학을 새롭게 알게 해준 한달살이였다”고 술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