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난 좋아마씸” 2025 제주 한달살이 ⓹ 박춘성씨
도서관 프로그램 참여해 제주 신화·마을 역사 깊은 인상
당올레와 곶자왈 등 제주의 자연은 창작에 주요한 영감

박춘성씨가 한 달간 제주살이를 하며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풍경은 사진으로 담았다.
박춘성씨가 한 달간 제주살이를 하며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풍경은 사진으로 담았다.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좋았어요. 혼자만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거든요.”

9월 한 달 동안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 머문 수채화 작가 박춘성씨는 제주 한달살이를 마무리하며 이같이 소감을 전했다.

평소 청주에 거주하며 가족을 돌보는 삶을 살아온 그는 이번 체험을 통해 낯선 지역에서의 생활과 예술 활동에 대해 새로운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박씨는 이전에 경남 사천에서 한 달 살기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제주도는 특별히 오랫동안 꿈꾸던 장소였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제주에 자주 왔지만 5일 정도 머무는 짧은 체류였어요. 다시 돌아가면 맥이 끊어지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언젠가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는데 이번이 좋은 기회였어요.”

그는 차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가장 큰 불편으로 꼽았다. 한달살이를 했던 한림지역은 대중교통이 제한적으로 운영돼 원하는 곳을 가가기 쉽지 않았다. “지도상으론 가까워 보이는데 막상 걸어가면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많았어요. 제주가 생각보다 정말 크다는 걸 실감했죠.”

이번 한달살이에서 그의 가장 큰 수확은 ‘제주 신화’와 ‘마을 역사’였다. 그는 설문대 어린이도서관의 ‘신과 함께–제주 신화 이야기꾼 되어보기’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그는 “국어 교사 출신 강사님께서 매주 신화와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땅의 지질, 물길, 씨앗의 이동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라고 말했다.

특히 ‘당올레’라는 개념이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흔히 올레길만 알지만 ‘당올레’는 마을의 신을 모신 당과 당을 잇는 길이에요. 마을 답사를 다니며 실제 눈으로 확인하니 풍경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는 수채화 작가로서 제주 전역을 걸으며 풍경을 그림으로 담았다. “비양도를 가장 그리고 싶었어요. 돌담이나 명월 마을의 골목길도 마음에 들어서 사진을 찍고 그림 소재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9월의 덥고 습한 날씨는 불편을 주기도 했다. 피부 알레르기로 장시간 걷기가 힘들어지자 그는 예전처럼 길 위에서 작품을 그리지 못했다. 대신 사진을 찍어 작업실에서 그림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바꿔 나갔다.

“예전에는 무작정 하루에 3만보도 걸었는데 이번에는 지쳐서 카페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도 송악산 둘레길, 정방폭포, 곶자왈 숲길 등에서 느낀 제주의 자연은 여전히 제 그림의 주요한 영감이 됐습니다.”

수채화 화가 박춘성씨가 설문대 어린이도서관의 ‘신과 함께–제주 신화 이야기꾼 되어보기’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수채화 화가 박춘성씨가 설문대 어린이도서관의 ‘신과 함께–제주 신화 이야기꾼 되어보기’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무엇보다 이번 한 달은 작가 개인의 삶에도 변화를 줬다. 그는 “저는 굉장히 소심해서 여행을 가도 모르는 이와 말도 잘 안 섞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해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낯선 곳에서도 충분히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의 한계도 체감했다. “언니가 오랫동안 암 투병 중이고 장애인이라 제가 함께 병원을 다니곤 했어요. 제주에 내려와 있으면서 갑작스러운 상황이 생기면 바로 갈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그럼에도 그는 언젠가 가족과 함께 제주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한달살이 프로그램 운영 방식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이번 제주는 9월 한 달로 기간이 딱 정해져 있어서 다른 일정과 겹칠 경우 참여가 쉽지 않아요. 사천에서는 시작일을 참가자가 정해 자유롭게 한 달을 정할 수 있었어요. 제주도도 조금 더 유동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제주에서 보낸 한 달이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한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화가로서의 영감뿐만 아니었다. 낯선 공간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얻은 자신감이 가장 값진 성과였다. 그는 “앞으로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은 것만으로도 제주에서의 한 달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우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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